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 있는 내륙국가다. 과거에는 실크로드의 중심 지역이었고, 현재는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다수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파슈툰족, 타지크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슬람 국가이다. 한반도의 3배 정도 되는 넓이에 철, 석탄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가난한 나라다.
지리적 요충지는 그만큼 여러 곳에서 위협을 당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덤’으로 불릴 만큼 강대국에게 패배를 안겼다. 근대 이후 영국과 러시아가 힘 겨루기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에 잠깐 점령됐지만 1919년 완전히 독립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고, 공산정권 수립을 지원했다. 냉전의 재점화되던 시기라 미국이 아프간 반군을 지원했다. 이때 미국의 지원을 받아 무자헤딘으로 활약한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이다. 소련은 아프간에서 10년 동안 전쟁을 했지만 결국 아프간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강대국과 전쟁을 하게 된 건 2001년 9.11 테러 때문이었다.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과 탈레반에게 보복해야 하나 물리적, 영토적 실체가 없기에 국가가 대응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은 탈레반을 지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2002년 시작된 전쟁은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다. 빈 라덴 사살과 탈레반 붕괴만을 추구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은 아프간에 “민주정권”을 세우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전쟁 개시를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국민들은 비용과 희생이 큰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화를 원한다면 더 많은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었다.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고, 국가 재건을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다. 아프간 군인들을 직접 훈련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아프간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아프간 자체가 전면전에 불리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높은 고원에 위치했기에 탱크가 진입하기 어렵고, 헬기도 쉽게 뜨지 못한다. 암석으로 된 땅에 굴을 파고 숨으면 위성도 위치를 잡아낼 수 없다. 게다가 아프간 주민들이 외부인에게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탈레반은 무섭지만 외부인은 싫다.
아프간 국민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특히 용맹하고, 특히 잘 뭉치기 때문에 강대국에게 이긴 건 아니다. 오히려 단합이 안되기에, 국가보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고,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가난한 나라로 남아있다.
아프간의 부패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탈레반을 축출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정부는 대통령부터 말단까지 모두 비리를 저질렀다. <부패 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를 쓴 세라 체이스(Sarah Chayes)는 2001년 말 탈레반을 축출한 미군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폭력과 가난에 신음하는 주민들이 탈레반 통치를 그리워하는 것에 충격받았다고 한다.
그 부패상은 충격적이다. 이 나라에선 가족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을 때도 성직자에게 뇌물을 줘야만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 칸다하르에서 파키스탄으로 국경을 넘어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차로 100㎞를 달리는 동안 8번 검문에 걸리고 그때마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 대통령 친인척들은 부패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대통령의 형 카이엄은 국가 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주택단지로 개발한 뒤 내전을 피해 이주해 온 주민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 분노를 샀다. 저자는 정부 최고위직이 부패의 말단에 있는 공무원까지 챙긴다는 점에서 아프간의 부패 사슬은 마피아 조직을 닮았다고 지적한다. 10만 달러를 횡령한 경찰국장을 구하기 위해 내무부 장관이 나서는 곳이 아프간이다- 부패한 돈 먹는 정부, 국민을 극단주의로 내몬다(조선일보, <부패 권력은 어떻게 국가를 파괴하는가> 소개글 중)
이번 탈레반의 카불 점령에서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현금 다발을 챙겨 가장 먼저 도망갔다. 아프간의 비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이렇게 만들어진 비참한 생활 때문에 사람들은 세속보다 신의 세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배우려 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에 돈을 퍼붓고, 기술을 가르쳐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의 자원과 인명을 희생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며 미군 철수를 정당화했다.
2021년 8월,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점령한 카불은 아비규환이다. 각국 외교관들은 서둘러 공관을 폐쇄했고, 카불 주민들은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 탈레반이 온건한 정책을 취할 테니 탈출하지 말고 남아달라고 말했지만 그걸 곧이 믿는 이는 없다. 이미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됐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깊이 몸을 숨겼다. 여자들은 부르카를 다시 샀고, 대학 졸업장을 버렸다.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고, 무엇보다 미국에게 패배를 안겼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비교된다. 보잘것없는 가난한 나라인 베트남은 제국주의 프랑스에 싸워 이겼고, 슈퍼 파워 미국에게 첫 패배를 안겼다. 미국은 이번 카불 사태처럼 사이공에서 정신없이 탈출했다. 미국이 물러난 베트남에는 공산정권이 수립됐다. 오랫동안 가난했지만 최근 베트남의 성장은 눈부시다. 이제 베트남은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베트남 공장이 멈추면 곤란할 정도다. 아프간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프간은 자원이 풍부하지만 산악 지형 때문에 산업이 발달하기는 쉽지 않다. 고도의 신정 국가라 노동보다는 종교활동을 중시할 수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은 주변 국가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은 신장 위구르의 이슬람 분리 운동을 촉발할까 봐, 러시아와 다른 국가들은 중앙아시아의 혼란이 자국 안보를 위협할까 봐 긴장하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가까운 아프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게다가 아프간에 접한 나라들 중에서 중국,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 최근까지 전투를 계속해왔던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화약고이자 나아가서는 테러 수출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으로서는 아프간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는 어렵다.
참고자료
중앙아시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 시작됐다(문화일보)
여성 포용 선언, 사면령 발표··· 탈레반, 잇단 ‘유화책’ 내놔(서울경제)
"아프가니스탄 정부 못믿어" 미국, 지방 군벌에 기댄다(조선일보)
"마치 1975년 사이공 보는 듯"…아프간 엑소더스 인파에 카불공항 대혼돈(매일경제)
美공군 없으니 허깨비였다… 100조원 들인 아프간군 붕괴 이유(조선일보)
아프간선 親서방 카르자이정권 부패 스캔들(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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