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쇼크.
간송 미술관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보물로 지정된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참고기사]문화계 '간송 쇼크'… 일각에선 "불상 진위 검증부터"(조선일보, 2020.05.22)
불교 불상, 특히 문화재로 지정된 물품이 경매에 등장하는 건 낯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건이 "간송 미술관"에서 "상속세 납부"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사회에 많은 숙제를 던져 주었다.
간송 미술관이 어떤 곳인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털어 소중한 유물을 모은 곳이 아닌가. 그곳에 소장된 국보, 보물만 해도 몇 점인가. 그런데 이 곳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소중하게 지켜온 보물들이 경매를 통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은 아닐까.
1. 어쩌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나.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시대에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의 갑부였고, 게다가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안목까지 지녀서 불세출의 컬렉터가 되었다. 사재를 털어 유물을 모았고, 그걸 100여 년 간 지켜왔다.
하지만 문화재 유지 보전에는 돈이 든다.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공간, 그리고 지식을 가진 관리 요원까지... 간송의 재산이 계속 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해마다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문화재는 가치는 있지만 직접 현금을 벌어오지 않는다. 문화재가 돈을 벌어오는 방법은 매각되는 경우와 전시, 대여를 통한 수익 발생을 들 수 있다. 간송 미술관은 1970년대부터 1년에 2차례만 제한적으로 미술품을 무료로 "공개"했다. 상설전도 아니었고, 돈을 받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좋은 유물을 구경할 수는 있었지만 그 유물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덜했다. 최근 들어 DDP에서 서화를 중심으로 전시를 하면서 1만 원 정도의 입장료를 받았지만 유물의 유지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간송 미술관이 보유한 유물들은 사유 재산으로 상속세 대상이다. 갖고 있기만 해도 세금이 나온다. 2대 전성우 이사장이 타계하면서 가족들은 상속세를 내야만 했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꽤 높은 편이라(50%대) 유족들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간송 미술관을 지키면서 현황을 타개할 방책으로 1) 컬렉션을 서화, 자기 위주로 가져가면서 나머지 불상 등을 판매하기로 하고, 2) 되도록 가격을 많이 받게끔 경매를 이용하는 걸 선택한 것이다.
2. 그동안 재정 지원은 없었나.
간송문화재단이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이다. 또한 리움 미술관, 호림 미술관과 달리 간송 미술관은 현역 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룹 차원의 재정 지원은 없었다. 게다가 오랜 기간 국고 지원도 마다했는데, "나랏돈을 받으면 간섭을 받게 된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맞는 말이다. 돈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전주(錢主)의 영향력이 커진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을 비롯해 문화재 선정 기준까지 뒤엎는 한국 상황을 생각해 보면 남의 도움 없이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그 노력은 칭찬해 마땅하다. 왜 돈을 안 받고, 이 지경까지 끌고 왔냐고 비난하기에 한국 정권의 입김과 전주의 참견은 너무 강하다.
[참고기사]간송미술관은 왜 ‘한국판 구겐하임’이 되지 못했나(한국일보, 2020.06.02)
3. 문화재는 공공재인가.
간송 미술관이 이번에 내놓은 불상 2점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자 "사유재"이다. 재산이기 때문에 상속세 부과 대상도 된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는 공공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공공재란 무엇인가. 누구나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재화로 비배제성, 비경합성을 가진다. 주로 도로, 국방, 통신 등이 해당된다. 그런데 문화재는 어떠한가. 국립 미술관 소속의 문화재가 공공재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개인이 소유한 문화재도 이에 해당되는가? 우리는 이걸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분명히 사유 재산이며, 따라서 함부로 공개하라고 할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재"라는 이유를 들어서 공공재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애초에 저 불상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논란이 되었을까? 문화계 일각의 논란처럼 불상의 진위 여부가 문제가 되어 문화재에서 제외된다면 저 불상의 경매는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라는 이유로 해외 반출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재가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특정 임계점 밑에서는 보존 의무나 논란 여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고대 유물만 경매로 인한 유출이 걱정되고, 김환기나 박수근의 그림은 경매로 해외 컬렉터가 가져가도 되는 것일까? 그 그림들이 주는 가치는 다른 고대 유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유독 고대 유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재로 주로 그런 물품들을 지정한다. 분명히 근현대 미술품도 가치로만 따지면 문화재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작품들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으면 해외로 유출되었다고 안타까워 하기보다 남들이 가치를 인정하고 국위를 선양했다고 말한다.
어디서부터 사유재산이고, 어디서부터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모호하다. 여러가지 잣대를 동시에 들이댄다.
고흐가 그린 "의사 가셰의 초상" 중 한 점은 일본인 사업가에게 팔린 이후 약 30여 년간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다. 항간에는 소유주가 자신과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그림이 지닌 가치를 생각해보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동시에 물건을 가진 개인의 마음이니 어찌할 수도 없다. 공공성은 지니고 있으나 공공재라 말할 수는 없다.
4. 어떻게 해야할까.
간송 쇼크는 꽤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문화재를 보유한 개인 또는 사설 기관이 해당 문화재의 공공성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국가의 세제 지원 이외의 방법이 있을까.
-현금을 발생시키지 않는 문화재에 다른 재화와 동일한 형태로 상속세가 부여되는 것이 옳은가. 문화재만 다르게 취급한다면 이는 차별이 되는 건 아닐까.
-사유 재산인 유물을 경매에 내놓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거래할 수 없는 문화재라면 사유재산 침해가 되고, 이는 결국 문화재 지정 거부 움직임이 되지 않을까.
-문화재를 국가가 모두 사들이는 것만이 논란을 없애는 방법일까. 애초에 그런 재원도 없고, 그런 식으로 세금을 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 질문 중 상당수는 결국 간송 미술관이 수익 사업을 하면 해결 또는 회피할 수 있다고 본다. 유물의 보존도 중요하지만 그 유물을 향유하고, 교육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상설전시를 하는 미술관을 만들고, 유물 유지 비용과 인건비 등을 고려해 합리적 수준의 입장료를 책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외 전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간송의 뜻과 어긋나는 일일까? 좋은 문화재를 지키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면 부차적인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타협해도 되지 않을까? 다음번 상속 시에도 또 유물을 팔아서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지속 가능한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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